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영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province.jpg|height=3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earth.jpg|height=350]]}}} || || '''{{{#FFF 1707년의 최대 판도[* [[아우랑제브]] 황제 시기의 최대 강역이다. 다만 아우랑제브 사후 반란이 수도없이 일어나면서 이처럼 거대한 대제국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 '''{{{#FFF 위성사진에 대입해본 무굴 제국의 영토[* 사실상 인도 대륙 전체를 장악했음을 볼 수 있다. 위쪽의 황갈빛 땅은 [[티베트]]이고, 사이로 흰색 선처럼 보이는 [[히말라야 산맥]]이 티베트와 인도를 서로 갈라놓고 있다.]}}}''' || 전성기의 무굴 제국은 심지어 '''현대 인도보다도 넓었다.''' 현재 [[인도]] 공화국의 영토가 약 3,287,263km²인 것에 비하여 무굴 제국 최대 강역의 영토는 4,000,000km²에 달했고, 비록 남부 일부를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드넓은 [[파키스탄]]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네팔]]과 [[부탄]]의 일부까지 장악하면서 현재 인도 영토의 약 '''122%''' 정도라는 무지막지한 영토 크기를 자랑했다.[* 이만한 영토는 인도 역사상 [[마우리아 왕조]] 외에는 없었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의 무굴 제국은 단일 수도 체제가 아니었고, [[델리]]와 [[아그라]], [[라호르]] 등 대도시들을 황제가 오가면서 통치하는 다중 수도 체제를 채택한 제국이었다. 이때문에 수도 도시들 간의 정치적 경쟁도 매우 심한 편이었으며 악바르 황제의 경우에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일부러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또다른 수도를 지어 살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에 황제의 권력이 강할 때에는 유럽의 [[신성 로마 제국]]처럼 말그대로 '[[팔츠|황제가 있는 곳이 곧 수도]]'로 기능하기도 했다. 덕분에 한창 전쟁이 많이 일어날 때에는 황제가 있는 막사가 수도처럼 여겨졌으며, 악바르나 아우랑제브 등 정복 황제들은 전쟁에 나갈 때 행정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기 위하여 궁정의 관료 대부분을 함께 끌고 나가기도 했다. 아니면 아예 황제가 친림한 장소에 새로운 수도를 지어버리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우랑제브 황제가 데칸 정벌을 위해 원정을 떠났을 때에 데칸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아우랑가바드'를 수도로 썼다. 한편 제국이 완벽히 몰락한 18세기 중후반부부터는 다중 수도 따위를 유지할 여력도 없었고, 무굴의 황제는 오직 [[델리]] 한 곳에만 반강제적으로 틀어박히면서 사실상 델리가 무굴 제국의 고정된 수도로 자리하게 된다. 제국의 행정 체계를 개편한 악바르 황제는 제국 영토를 '수바()'라는 이름의 행정단위로 나누었다. 현재의 주 정도에 해당하는 거대 행정구역이었으며, 각 수바는 '수바다르'라고 하는 일종의 주지사와 비슷한 관리들이 황제를 대신하여 다스렸다. 처음 만들어질 때는 12개의 수바가 있었으나 악바르가 정복 활동을 펼치면서 그가 죽을 즈음에는 총 15개의 수바가 있었고 아우랑제브 시대에는 이보다도 훨씬 많아진다. 이 수바들은 하위 행정구역으로 구에 대응되는 '사르카'로 나뉘었고 이 사르카는 읍과 면 정도에 해당하는 '파르가나'와 '마할'로 또 나뉘었다고 한다. 18세기에 중앙 정부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자 지방의 수바들은 사실상의 독립국처럼 행세했다. 각각 따로놀던 수바들은 결국 하나씩하나씩 영국이나 [[마라타 동맹]]에게 잡아먹히면서 사라졌다. 참고로 가장 대표적인 수바에는 아그라 수바, [[벵골 수바]], 델리 수바, 구자라트 수바, 카불 수바, 비하르 수바 등이 있었다. 무굴 제국에는 [[나와브]]()라고 하는 직급이 있었다. 나와브란 지방의 반독립적인 태수나 토후들에게 하사한 직책으로, 봉신국의 [[왕]]이나 [[총독]] 정도에 해당되는 최고위 직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세 인도사를 공부하다보면 꽤나 흔하게 접할 호칭이기도 하다.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아니었던 무굴 제국이 모든 행정구역 하나하나를 통치할 수 없었으니 일단 지역을 정복한 후 그 곳을 다스리던 가문에게 나와브직을 하사한 것. 나와브들에게는 무굴 황제에게 충성해야 할 의무와 힌두교도들의 반란을 억누를 의무가 있었다. 주로 해안지대나 국경지대의 태수들이 나와브를 맡았는데 대표적으로 [[구자라트]]나 [[데칸]] 지방에 나와브들이 많이 존재했다. 나중에 무굴 제국의 힘이 약해지는 18세기에 독립한 [[하이데라바드 왕국]]은 더 독립성이 강한 '''니잠'''[* '영역의 통치자'라는 뜻의 니잠 울물크의 약칭으로,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창업군주]]인 [[아사프 자흐 1세]]가 [[무굴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니잠'''이라는 칭호를 칭하였는데, 이후에는 하이데라바드 왕국 군주의 호칭으로 굳어졌다.]의 칭호를 칭하면서 거의 자주국으로 행세하기도 한다. 나와브 역시 19세기 들어서는 모두 [[영국 동인도 회사]]에게 무릎을 꿇고 복속되었지만 나와브라는 칭호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고 20세기 들어서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영국인들은 20세기에 인도에서 벼락출세해 막대한 부를 쌓은 백인 [[졸부]]들을 경멸조로 '나보브(nabob)'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나와브'에서 따온 명칭이다. 인도에서 재화를 수탈해 100여 명에 달하는 인도인 하인들을 부리는 등 마치 왕처럼 행세하며 꼴값을 떤다고 비하하는 말이었다.][* 의외로 nabob이라는 단어는 [[디즈니]]의 영화 [[알라딘(영화)|알라딘]] 속 노래 'Friend Like Me'에도 등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1at7kKzBYxI|#]] 2분 13초 쯤에 nabob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